• 바래의 반란
  • 조회 수: 1284, 2017-07-11 20:55:27(2016-02-14)
  • 어젯밤 잠시 아래층에 볼 일이 있어 나가려고 출입문에 다가서는 순간 밖에서 몸을 터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바래다!!”소리를 지르며 문을 여니 정말 애타게 기다리던 녀석이 살아 돌아와 떡하니 있다. 녀석도 반가운 건지 미안한 건지 온 몸을 흔들며 낑낑대는 반가운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데, 비에 온몸이 젖고 얼굴이 좀 부은 듯해도 멀쩡하게 눈 앞에 있는 것이 꿈만 같았다.

    설 명절 다음날 이른 아침. ‘덕두’의 날카로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집 개나 들짐승이 나타나면 내는 특유의 소린데 직감적으로 또 “그 놈이 왔구나” 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당 잔디밭에서 어슬렁거린다.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숫캐 한마리가 수시로 우리 ‘바래’를 꼬시러 올라오곤 했다.

    시끄러워 쫓아 버리려고 하는 순간 매어놓은 바래가 줄을 끊고 그 놈과 함께 앞마당을 가로 질러 고사리 밭을 지나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마치 미운 일곱 살 어린애처럼 밉상이었다. 그러고는 꼬박 나흘이 지나도록 흔적도 볼 수 없었던 놈이 나타난 것이었다.
    ***

    집 나간 첫째날. 보통은 실컷 놀다가 반나절이면 돌아오곤 했던 녀석이 하루 종일 보이질 않아 은근히 걱정되어 차를 타고 이웃동네까지 한 바퀴 돌았지만 흔적도 볼 수 없었다. 어둠이 깔리고 밤이 되어도 나타나질 않는다. 6년 동안 이렇게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았던 적이 없어 걱정이 태산이었다. 자정이 넘었지만 잠도 오질 않는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신경이 곤두세워져 잠을 설쳤다.

    둘째날 아침. 집에서 10km나 떨어진 창원마을과 금계마을, 가까이 있는 모든 마을 골목 골목을 다 훓어 보았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허탈하게 집으로 올라오는데 어제 함께 줄행랑을 쳤던 숫놈이 집 쪽에서 내려온다. 반가운 마음에 집으로 올라 왔지만 바래는 보이질 않는다. 허탈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아내와 함께 걸어서 이웃마을 서너 군데를 집집마다 기웃거려 보았지만 봤다는 사람도 없다. 온통 그 놈 생각에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셋째날도 이른 아침부터 나돌아 다녔지만 꼬랑지 하나 볼 수 없었다. 남의 집에 매어 있는 개들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점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이 들어간다. 그동안의 습관과 행동으로 보아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나타나지 않는 것은 남의 손을 탔거나 사고가 생긴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한낮에 또 그 숫놈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것을 보니, 그 놈도 ‘바래’가 궁금해서 찾아온 것으로 여겨지니 더욱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들었다.

    넷째 날. 그 녀석이 보이지 않던 날부터 온 집안이 그렇게 허전하고 쓸쓸할 수가 없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리니 마음은 더욱 심란해졌다. 이제 그 놈을 포기하고 잊어야 하나? 살아 있다면 이렇게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미친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도, 장에 다녀오는 길에도 마을 어귀를 올라올 때면 불쑥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이 눈에 선하기만 한데...

    벌써 6년이 넘게 우리와 함께 생활했던 한 식구이기에 당연히 그립고 마음 한 구석이 아린 것인데, 이것도 집착인가 싶어 애써 인연의 끈을 내려놓으려 했지만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과 애정을 생각하면 그리 쉽게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낮에는 방안에서 기다릴 수가 없어 어젠 아직 좀 이르지만 밭에 퇴비를 하루 종일 나르고 오늘도 비가 내리는 데도 밖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한답시고 들랑거렸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봄을 재촉하는 밤비의 분위기를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텐데 술 한잔의 생각도 갖지 못할 만큼 여유가 없이 그럭저럭 밤을 넘기고 있던 그 때 이렇게 홀연히 나타난 것이었다.

    아내도 펄쩍펄쩍 뛰다시피 좋아라 한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우선 먹을 것부터 챙겼다. 그 놈이 좋아하는 날계란 다섯 개에다 마른 멸치, 건빵까지 정신없이 먹어치운다. 배가 고프긴 무척 고팠나본데 생각보다 몸은 말라보이진 않는다. 날이 밝으면 자세히 봐야겠지만 어디 다친 데도 없어 보인다. 길게 끊고 나간 끈은 다 짤려 나가고 고리 끝에만 걸려 있는 걸보니 사람이 잘라준 것 같지는 않다.

    어딜 갔다 왔냐고 물어도 묵묵부답 대답할 리는 만무하지만 아마 속으론 이 놈도 우리를 엄청 찾아 헤매고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이놈아!”
    “너 이놈! 이제는 국물도 없다” ㅎㅎ

    이제 편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land.JPG

댓글 2

  • 김현조

    2017.07.11 17:21

    몇년전 손님들이 던져준 음식물 잘못 먹어 갑자기 가버린 만복이에 대해 쓰신 글이 생각나 오랫만에 산방홈피를 찾았습니다. 동네 건달의 꼬심에 넘어가 주인장 맘고생하게 했던 바래 얘기도 다시 보네요. 이웃집의 초상집 아닌 초상집 분위기기 때문에 힘든 우리도 힐링하고 싶어 늘 맘에 두고 있는 노고지리 산방에 목요일 가겠습니다.
  • [레벨:10]노고지리

    2017.07.11 20:55

    아이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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